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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7/21



점심때 짬을 내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 동네에 차없이 대중교통만으로 가는 것은 처음이라, 출발 직전에 전화를 드려 가는 방법에 대해 아버지께 여쭤봤다.


" 00 역에서 내려서 북부역 쪽으로 나오면 버스정류장이 있어. 거기서 60번을 타서. 00 동사무소에서 내리면 돼."


꼼꼼히 받아적고 가까운 역으로 가서 국철을 탔다.
말씀하신 00역에 도착하니 '북부역' 이라는 방향은 없다. 전날엔 결국 밤을 새워버렸으니 머리는 어질어질, 뜨거워죽겠고..
에라.. 아무 출구로나 나가서 빈 택시들이 도열한 차도로 향했다.


맨 앞에 서있는 택시의 문을 벌컥 여니, 얼렐레.. 운전석이 비어있다. 기사가 없다 --;;
할 수 없이 그 뒤에 있는 택시로 다가갔다.


" 00동 가죠? "


핸들 위로 엎어져있던 기사아저씨가 고개를 든다.


" 여기 있는 택시들은 시흥 가는 것들이에요. "
" 네에?? "
" 00동 가시려면.. 저기 복숭아꽃 보이죠? 거기 밑으로 들어가서 길 건너서. 거기서 택시 타세요. "
" 하아.. 네에.. 감사합니다. "


아저씨의 지도대로 복숭아꽃 걸개그림이 걸린 굴다리 밑을 통과했다. 통과했더니 즉시 보이는 것이 버스정류장.
노선안내도에 60번 버스가 표시되어있다. 택시 안 잡아도 되겠군.
금새 이마에 [60번]이라고 마크된 버스가 나타났다.


" 저어, 이 차 00 동사무소 가나요? "
" 00 동사무소요..? 00 시장은 가지만.. "


젠장. 아구가 맞는 게 한 개도 없구나. 일단 60번 버스인 건 확실했으니 올라타버렸다.
올라타자마자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 지금 가는 중입니다. 근데 00 동사무소가 아니라 00시장으로 간다는데? "
" 에이그.. 네가 버스를 잘못 탔구나.."
" 60번 이라면서요. "
" 그래~ 60번. 근데 그게 동사무소 오는 건데..? "
" 운전사한테 물어봤는데 그런 정류장을 잘 모르세요. "
" 그럴리가. 그럼 00시장은 멀고 다른 정류장은 어디냐? "
" 흠.. 00 초등학교는 아세요? "
" 알았다. 그럼 거기서 내려라. 내가 그리로 나갈게. "


목적지를 00 초등학교로 변경하고, 버스의 흔들림에 너울너울 몸을 맡기고 창 밖을 바라봤다.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더니만 결국 버스 안에는 운전사와 나만 남았다.
연예인 탁재훈을 조금 닮은 운전사가 거울을 통해 나를 힐끗힐끗 보면서 말을 건다. 전화를 엿들은 게다.


" 저기요~ 이 버스가요~ 코스가 두 가지가 있어요. "
" 같은 60번 버스인데도요? "
" 네에~ 얼마 전에 바뀌어서요~ 아마 다른 코스를 타셔야되는데 이 차를 타셨나봐요~ "


그렇다고 해도 같은 회사 버슨데, 정류장 이름조차 생소해하는 당신은 뭐니? 어제부터 취직한거니?
아무튼 버스는 00초등학교 앞에 나를 내려주었고, 아버지는 이미 나와계셨다.
나는 운전사에게 들은 이야기와 00역에는 북부역이라는 이정표는 없었다는 걸, 아버지에게 고발했다.


" 원래 초행길은 물어보면서 다니는 거야. "



안쓰러움이라곤 한 조각도 없는 말투로 아버지는 남의 일처럼 대꾸하신다. 정말 못 말리겠군..;;
그 이후 두 시간 정도를 아버지와 함께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면서 바라시는 대로 일을 처리해드렸다.
불필요한 것임을 알면서도 간밤을 고민과 갈등으로 보내버렸을 뿐.. 난 역시 아버지 뜻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류는 대부분 완료가 되었으니 이제 추후연락만 기다리면 되고..
볼 일이 끝난 사무소 앞에서 아버지와 헤어짐의 인사를 했다.


" 그냥 간다고? 하긴 너 빨리 가야한다고 했지.. "



이런 시간은 매번 아프다.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면서도 표정은 굳어버린다.
가는 길에는 아버지가 직접 버스정류장까지 안내를 해주셔서, 올 때처럼 금방 와버린 60번 버스에 올라타서 창 밖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문득 떠오른 말 때문에, 냉방이 잘 된 버스라서 운전사에게는 미안했지만, 차 창을 확 열어제꼈다.


" 결과 나오면 꼭 연락 주세요!! "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바깥에 서 계신 아버지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하신다.
그리고 내가 창문을 도로 닫자마자 버스는 출발을 했다.
가슴은 메여오는 데 사람들 눈이 신경쓰여서 애꿎은 주먹만 꽉 쥐는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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