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탔을 때나 길거리를 다니다가 (처음 보는) 어린아이를 잠깐씩 마주칠 때마다 드는 아쉬움이 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가방에 사탕이라도 몇 개 넣어 다닐껄.. '
이렇게 귀여운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보는 아기사슴같은 녀석한테 뭐 하나 선사하고 싶은 데,
정작 가진 건 이럴땐 쓰잘데기 없는 것들 뿐이니 어찌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어제 낮에 바깥일을 보고 슬슬 집에 갈 준비를 하는 참인데, 같이 있던 사람이 내 백에다 음료수 캔 하나를 슬쩍 넣어줬다.
"이거 웬 거?"
"그냥 생겼어. 갖고 가서 마셔."
뭐 이런걸 다. 그러지 뭐. 인사하고 돌아서서 귀가하는 길에 단골 책대여점에 들렀다. 책을 몇 권 골라서 카운터에 올려놨는데, 주말이라고 주인장은 어딜 가고 알바생이 바코드를 찍는다. 그래봤자 초면이다. 주인이 어딜 급하게 나갈때 단골로 오는 아무한테나 전화를 걸어서 "야, 잠깐 나와서 세 시간만 봐줘라." 하고 시켜먹는 식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그 가게 들락거리는 손님 대부분이 주인 대신 가게를 볼 줄 안다.. ㅎㅎㅎ
오늘의 알바생으로 당첨된 사람은 풋풋한 여고생이다. 남자친구랑 같이 가게를 보는 것 같은데, 내가 책을 고를 동안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전단지 메뉴를 열심히 연구하더니 내가 책을 계산할 즈음엔 남자애는 인근에 있는 피자집으로 피자를 시키러 나가버렸다. 바코드 찍는 소리가 삑.삑 하고 나는 동안, 나는 미리 셈을 해서 지갑에 있는 동전들을 갈무리 하던 참이었다.
- 어.. 손님. 잠시만요.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알바생이 바싹 다가오더니 내 머리통 앞에서 뭔가 골똘했다.
- 됐다... ^^
그녀가 내 앞머리에서 떼어낸 것은 죽은 날파리. 하루종일 오지게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어디선가 날아붙은 모양이다. 첨 보는 남의 머리카락 만져주는 것도 황송한데, 거기다 죽은 벌레까지 잡아주다니. 나는 요새 여고생들 하고다니는 짓들을 보면 길에서도 기함한 적이 여러번이라, 그녀의 처신에 굉장히 감동했다.
- 어머나.. 감사해요.
고마워 하면서도 웬지 허둥지둥. 세상에 이렇게 착한 아해도 있구나. 값을 치르고 지갑을 백에 도로 집어넣으려는 데, 그 안에 아까 받은 음료수가 눈에 띄었다.
- 아가씨 드세요.
시원한기가 좀 가셨지만 아쉬운대로 이거라도 좀.. 하며 슬쩍 내밀고 그대로 눈인사만 하고 나왔다. 아이구 착해라. 내가 준비한 건 아니지만 다행히 저걸 갖고 있었기에 얼마나 잘됐어.
받은 친절도 물론 좋았지만, 타이밍 맞추어 사례를 해내고 났더니 그 만족감과 기쁨은 말로 다 못한다.
이러니 평소에도 가방엔 내줄만한 것을 좀 갖고 다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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