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14
피곤한 하루였다.
무리해서 10킬로미터 가까이 걸었던 것때문에 전날 저녁무렵부터 컨디션은 죽이 되어있었는데다,
오늘은 피곤한 사람들과 종일 하루를 보냈다.
녹초가 되어 누워봤지만 잠은 쉽사리 들지를 않고..
집안에 잘 드는 과도 하나 있으면 지금처럼 누운 자세로 가슴에 푸욱 꽂고 영원히 쉬고 싶은 심정이랄까.
사람 자취도 없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
2. 6/15
참외를 데려다가 쓰다듬어 주는 데, 턱 밑에 털이 검게 뭉친 것이 대롱거렸다. 뭐가 묻었나 싶어 잡아뗐더니 털이 붙은 채로 숭 빠진다. 그것이 빠져나간 자리는 맨살거죽에 천공이 생겨 볼주머니까지 뻥 뚫린 상태였다.
핏덩어리도 아까 떼어낸 딱지에 말라붙어있었고 뚫린 자리는 아문 것이 확실했으니, 이건 무척 오래된 상처라든가 피부병이었나보다. 나는 발견하지 못한 흉터가 더 있을까하고 이리저리 털을 파헤쳐가며 자세히 살펴봤다. 귀 뒤에 바늘구멍만한 공동이 하나 더 있었다.
첫날 데려왔을 때 못쓰는 손을 발견했던 기억과 맞물려 기가 막히고 가슴이 아팠다.
내가 뭘 어떻게 해주어야 네가 더이상 아프지 않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 난 너와 종이 달라서 네가 무얼 좋아하고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낄지 잘 모르겠다. 남은 날이라도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해...
한 손으로만 물병에 매달렸다가 겨우 한 입 축이고 뒤로 나동그라지는 널 보면, 난 성한 몸을 가지고 참 방종하게 살아왔다는 반성도 들고. 너 돌보는 시간 만큼은 힘을 내야겠다.. 서글프고 가엾은 건 내 독선일뿐, 참외는 제 어디가 못났다는 마음따윈 품어본 적도 없겠지.
3. 6/16
인터넷 세상은 일각이 여삼추라. 잠시 쉬어보면 그새 많은 일들이 벌어져있다. 요즘 블로그의 댓글을 막아놓고 나서 느끼는 것은 이런 점과 대비되는 절간같은 고요함.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던 버릇이 겨우 고쳐지려나보다.
드디어 주인된 느낌이다... 내쪽에서 휘둘릴게 아니라, 내가 휘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것이다. 정이 많은 게 아니라 작은 파동에도 요동을 치는 내 그릇이 협소한 탓이라 다녀가는 사람들이 불편겪고 있긴 하지만..;;
매번 틀어진 심사를 다스리질 못해서 지가 이랬다저랬다 해놓고, 막판에 혼자 얼굴 붉히는 일이 다반사라니.
이 참에 든 생각이 딱 40살 먹을때까지만 살기로 할까!! 하는 헛소리였다.
마흔이 되어도 지금처럼 철이 안들면 확 죽어버리자!! 하고.. ㅎㅎㅎ 아, 나이 얘기가 나오니 등골 서늘하다.
이런 생각 품고서도 다다음주에 동해에 놀러갈 예정이라서 이것저것 알아봤다. 그려.. 남보다 덜 살 작정이면 가고싶은 데 가서 원없이 놀다오리라. 또 아냐? 놀다보면 수행이 될란지.. ㅋㅋ
4. 6/17
어린 시절에 집에 '동서 딱다구리 그레이트북스'라는 소년소녀동화전집이 있었다.
그 중에 [논어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공자님께서 소년시절에 음악공부를 하시면서 한 곡을 가지고 긴 시간 공부하되 깨우치지 못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걸 보고 스승이 우매한 제자라며 한탄하지만, 석달 후에 비로소 깨우쳤노라 고하는 공자. 공자는 그저 노래 하나를 익힌 것이 아니라, 그 노래를 지은 사람과 그 노래를 지은 심정과 상황까지 깨우친 것이었다. 나야말로 그러고 싶다. 나야말로 나를 이끄는 한가지 현상에 이끌려 그것에 집중하고, 생각을 거듭하여 그것의 기원을 어렵사리 깨우쳤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보다 훨씬 어린시절의 기억에는, [TV문학관]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거지꼴같은 차림새로 염복순이라는 여배우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당시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로, 세상물정 모르는 나같이 어린 아이도 그런 여자는 이상한 여자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요염한 타입의 미인인 그녀가 엄마 아부지와 함께 보는 TV에 나와서 담배를 피운다. 그것도 무척 자유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피운다. 그걸 보던 엄마랑 오빠가 이런다.
" 염복순이 진짜 이쁜 얼굴이야."
담배피는 걸 뭐라지 않고 배우만 본다. 난 신기했다. 꽤 오래된 일이건만 그래서 잊혀지지가 않나보다. 난 그런 평을 해주는 우리 가족의 분별에 감동했다. 가난해도 이렇게 세련된 가족을 만났으니 결국 난 행운아다.
5. 6/17
어느날 엄마한테 흠씬 맞고 확 죽어버릴까 생각했던 열 두살 때도, 살아온 세월이 왜이리 아까운지 그게 걸려서 그냥 마음을 접었다. 삶의 집착이 받아내지 못한 빚처럼 질겼던 것은 한지붕 아래 살던 사람들이 내 머리속에 심어놓은 주문때문이다.
"하느님은 전부 다 보고 계시니까."
허튼 짓 못하게 만드는 징글징글한 감시자. 하지만 미울 수도 없는 것이, 세상사람이 다 몰라줘도 하느님만은 알아주신다는 뜻도 되니까다. 이래서 밖에서 못하는 멍충한 소릴 블로그에서는 한다.
하느님은 인터넷 잘 못하실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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