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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2/17 이 죄많은 인간을 용서하소서





갑자기 시험 볼 일이 생겨 시험준비가 겹치면서, 일 + 운동 + 시험준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 어제 저녁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소식이 전해져, 바빠서 여유가 없던 마음에 한 줄기 균열이 생겼다.


국민학교 고학년 시절에 처음으로 추기경을 직접 뵌 적이 있다. 이태원성당에 교육관이 새로 지어지게 되면서 기공식 행사에 참석해주신 것을 신자들과 함께 맞이하러 나간 일이 있는데, 그때 뵌 첫 느낌은.. '와, 할아버진데도 키가 되게 크셔~!' 였다. 신장이 정확히 어찌 되시는 지는 모르겠으나, 내 눈엔 왜그리 거인같아 보였는지 모르겠다. 퍼낸 흙에 축성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추기경은 어디가 어떻게 다른 지 나름대로 눈여겨 찾아봤지만, 행동에서 별달리 표가 나거나 하는 건 모르겠고 오로지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커 보일까, 그게 참 이상했다.


93년에 어머니를 용인 천주교 묘지에 모실 때, 49제 때였나 한 번 더 산소를 다녀오면서 다른 곳도 함께 돌아본 적이 있다. 산소관리인의 말로는 매년 언덕 하나가 묘지로 깎일만큼, 계단식 산소에 새로 자리잡는 고인의 수효가 많다고 하였다. 그 중에 성직자 묘소라고 따로 마련된 자리를 보았는데, 그 한 가운데 넓직한 공터가 한군데 있었다. 그 자리는 나중에 추기경님 모실 자리라고 했다.


뉴스와 각종 일간지에서 '추기경 김수환 선종'이라는 기사를 앞다퉈 보도하는 것을 일일이 읽어보고, 오늘 뉴스에서는 명동성당 앞에 추모행렬이 길게 늘어선 것도 보았다. 어제만 해도 '늦기 전에 명동에 가서 마지막으로 뵈어야겠다' 마음 먹었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팔순할머니까지 그 행렬에 동참해서 이 추운 날씨에 두세 시간을 줄을 섰다는 인터뷰를 보니 나까지 합세하는 것은 외려 그런 분들의 고생만 가중시키는 게 아닌가 생각되서 좀 저어된다.


오늘도 빼먹지 않고 저녁무렵에 운동장에 나가 걸음을 걷는데, 묵상하는 심정으로 천천히 걷다가 하늘을 보니 예쁜 별들이 오늘따라 열 개도 넘게 보인다. 별을 보면서 귓가에 스치는 겨울바람을 느껴본다. 추기경님도 이젠 별이 되시겠구나, 바람이 되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죄많은 인간이 살아있음을 용서하소서. 님이 명하신 사랑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오랜만에 울면서 화살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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