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운동장엔 나와 다른 여자 한 사람. 그렇게 둘이 운동장을 걷고 있었다. 내가 서른 바퀴째 운동장을 돌고 있을 무렵, CK진과 긴팔 티셔츠만 걸친 한 남자가 합류했다. 시간이 흘렀는지 12시가 되어 운동장을 비추던 보행등 불빛이 자동적으로 꺼졌다. 어두워서 청년인지, 청소년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지만, 그는 오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치곤 아담한 몸매였지만 어찌나 상쾌하고 깨끗한 폼으로 달리는 지, 그가 내 곁을 추월해서 지나갈 때마다 내겐 그를 따라 달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나 점점 커져갔다.
아마도 10바퀴 정도를 흐트러짐없이 달리고 나서, 그는 가버렸다. 그는 자정이 되면 늘 이 운동장을 찾는 걸까?
언제 다시 그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나는 궁금했다. 두 번만 더 만났다간 낮에도 그를 생각하며 애가 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깊은 존재였다.
그 바람에 내리 3일 동안 밤이 되면 운동장으로 출근했다. 가긴 갔는데, 만날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자정에 가지는 않았다. 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만들어먹고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그냥 이어폰을 꽂고 타박타박 걷다가 오기도 했다. 역시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건강을 위해 경보나 달리기를 하러 나오는 동네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오늘은 나도 젖먹던 힘을 내서 3바퀴를 헉헉거리며 달려보았는데, 걱정했던 무릎보다는 허벅지 근육이 당겨서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자고 일어나면 더더욱 장난 아니겠지. 좀 더 연습해서 달리기가 익숙해지면, 그 때는 자정에 짠~하고 나타나서 그의 뒤를 좇아볼까 하는 허황한 욕심도 품어본다. 아아~ 이러다 여름이 되면 핫팬츠에 스포츠브라만 걸치고 달려줘야 할 나이스바디가 되는 것은 아닐까? 크크.. (망상에 집착해서 실성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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