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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2/13 간만에 단비





비가 잘도 내린다. 이거 딱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네...
겨울가뭄 심하다는데 이왕 내리기 시작한 거 계속 와라. 농민 한숨은 잠자고, 국민 주름살 펴져라~


어제는 일찍부터 서둘러 산책을 나갔지만, 나선 지 10분 만에 비가 시작되는 바람에 별로 운동은 못했다.
출발하면서 2천원을 챙겨가지고 나가서, 먼저 책대여점에 들러 소설 두 권을 빌렸다.
빌린 책 위에 잔돈과 집 열쇠를 얹어서 도로 카운터에 올려놨다.


- 돌아올 때까지 맡아주세요! 그럼 수고~ ^^


그러구선 운동장에 도착하니 웬 빗방울.
가는 빗방울이라 개의치않고 걷기를 시작했지만, 10분 쯤 지나니 후두둑 소리를 내며 굵은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아으~ 덴장~ " 을 외치며 가까운 지붕 밑에 몸을 숨겼다. 어쩐지 사람이 없더라니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은 건 나뿐이었구나. 지붕을 받치는 기둥에 기대어 서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자니, 집을 지척에 두고 비오는 날 이런데 나와서 궁상을 떨어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란 놈이 많이 내릴까 조금 내릴까 갈등하던 타이밍이었나보다. 빗발이 가늘어지다 굵어지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라디오를 한시간째 듣고 서있자니 슬슬 비가 멎어가는 기색이 보였다.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넓게 펴서 오드리헵번 흉내를 냈다. 머리통 전체를 감싸게끔 두른 다음 턱 밑에서 질끈 묶고 걷기 ... (오드리가 아니라 판피린 아가씨인가?) 그렇게해서 고작 3바퀴를 돌았는데, 안그래도 크레이지한 상태였던 비구름이 또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하는 거다. 목도리 덕분에 머리카락은 안 젖겠지만 안경에 빗방울 맺히는 건 어쩔껴..!! 안경에 와이퍼가 달린 것도 아니고 시야가 흐려져서 어쩔 수 없이 철수했다. 오늘은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안 돕는 날이었나보다.


- 맡겨둔 거 찾으러 왔어요~


여전히 의자에 파묻혀 무협지를 읽고 있던 주인장이 비에 젖어 쫀조리가 된 나를 보고 궁금해한다.


- 어딜 갔다 왔어요?

- 운동.

- 어디서?

- 저기 운동장. 요즘 날씨 풀려서 사람 많거든요.. 오늘 어쩐지 없드라니, 비오는 거 나만 몰랐나 봐요.

- 크크큭~


책과 집열쇠와 잔돈을 챙겨서 꾸벅 인사드리고 물러났다. 그 이후론 넉 잔의 블랙커피와 소설책과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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