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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 94년 사이에는 대학로에 있던 술집을 많이 갔다. 다니던 대학이 그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숭동 쪽에 있던 술집들은 대개 매장이 넓고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탓인지 값이 좀 비쌌는데,
나와 동기들이 자주 드나들던 명륜동 방면 우리은행 뒷편 골목에는 저렴한 작은 호프가 많았다.
그쪽에서 맥주 500CC를 천원 받던 시세일 때, 동숭동쪽 비싼 호프에서는 1200원을 받았다.
여튼 그때는 안주 한개로 맥주만 들이붓다시피 마시고선,
단골노래방에서 5천원을 내고 두 세시간씩 노래를 부르다 집에 가는 것이 저녁 일과였다.
그래도 어찌 똑같은 술만 맨날 먹을 수 있겠는가.
우리 중에 어쩌다 용돈 좀 받은 사람이 있으면, 별미라고 챙겨 마신 것이 바로 흑맥주다.
단골호프 주르르 늘어선 그 골목에 딱 한 군데, 오두막같은 외관으로 버티고 선 그 곳이 '흑맥주 로제' 였다.
천원짜리 한 잔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작은 스타우트 병을 천몇백원 받던 "고급술집"이다.
넓이는 작은 분식집만한 사이즈지만 2층이 있었다.
2층은 꼭 다락방처럼 천장이 낮아서 오두막인테리어와 잘 어울렸다.
흑맥주에 대한 소감이라면, 뭐 그냥. 색깔이 어둡고 쌉쌀하고 고소하고.
쥐포튀김과 스타우트. 아니면 쏘야볶음과 스타우트.
2층 창가 자리에서 이것들을 앞에 두고, 네온간판에 하나둘 불들어오는 거리를 구경하다보면
그날은 그냥 노래방 갈 생각도 안들고, 꼭 소주 한잔에 만족한 아버지들처럼 집에 갈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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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여름인가 가을인가, 하이트가 처음 나왔다.
처음부터 암반수였던가, 아무튼 깨끗하다는 광고로 대대적인 어필을 했다.
OB맥주가 꽤 점유율이 높았는데도.. 하이트가 신작치고는 잘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1학년 2학기에 불쌍하다는 딱지를 달고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40만원이었다.
(한 학기 등록금이 120만원이던 무지 싼 학교라서, 가난보조 장학금이 저 정도다..)
그 40만원을 술값으로 풀었다.
평소 신세진 사람들..이 아니라 너무 짝사랑했던 선배와 그 친구들을 위해 술값으로 풀었다.
(지금에 와선 수치스러운 기억이지만, 어쩌겠는가.. 당시 나란 사람이 저런 그릇이었으니..)
그 선배는 단언컨데 상당히 매너없고, 교양없고, 배려없는 三無에 도달한 사람이었으니,
내가 장학금으로 쏜다는 걸 알면서 말린 일도 없고, 이 참에 하이트를 마셔보자고 신이 났다.
하이트 대자 한 병에 2500원 했던가보다.
나와 내 친구, 그 선배와 선배의 친구 2명, 이렇게 다섯명이서 1차에서만 5만원 넘는 술을 마셨다.
(어머, 다시금 열받아 ㅜㅜ)
그 뒤로도 그 선배에게 한참 코 꿰어서 밤마다 징징 울면서 고민했던 기억이 나는데,
고향에서 자길 기다리는 약혼녀 비슷한 여자가 있다던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별 개의치 않던 내가
갑자기 어느날이던가... 그가 인간같이 뵈지도 않고,
관심 한번 받아보려고 오만가지 주접 떤 역사들이 참을수없는 자괴로 밀려들면서
그냥 그렇게 하루아침에 맘이 싸늘히 식어버렸다. 그리고는 학교에서 마주쳐도 눈을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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