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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past




언젠가 이웃님께서 방명록에다가 그림에 대한 포스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는데,
아마도 블로그 대문에 붙여놓기한 명화 때문이지 싶다.

난 그림이란 거, 그 중에서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화를 보면..


솔직히 맘이 좀 쓰리다.



우리 아버지의 직업은 화가다.


어릴 때는 그런 얘길 해주면, 친구들이 백이면 백 이렇게 물어봤다.

- 그럼 너네 아빠,  전시회도 해?

어디서 주워들은 게 많은 애들은 이런 질문도 한다.

- 그럼 너네 아빠, 홍대 나오셨어?



이 정도 쓰니 더이상 적기 싫어진다만, 어쨌든 그런 정통라인을 밟은 화가는 아니시다. 어머니는 가정환경조사서를 쓸 때, 아버지의 직업란에 [상업미술가]라고 쓰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아기 때부터 난 '뺑끼' 냄새를 맡고 자랐다. 우리 오빠들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10대 때부터 그림을 그리셨다고 한다.

낡고 헤진 스타킹은 절대로 버리면 안되었다. 못쓰는 캔버스를 파렛트 삼아 아버지는 그 위에 색색깔의 뺑끼를 짜놓고 그림을 그리셨는데, 하룻밤이 지나면 뺑끼 표면에 엷은 막이 생기며 굳기 시작한다. 다음날이 되면 나이프로 그 막을 걷어내고 나서, 남은 뺑끼를 잘라낸 스타킹 조각에 잘 퍼담아 (삼베천에다 한약 짜내듯이) 스타킹으로 걸러내어 쭈욱 짜내면, 새것처럼 폭신하고 촉촉한 뺑끼가 된다.

친가엔 그림을 그리는 분이 여러 분 계신데, 그 중엔 국전에서 입선한 분도 계시다.
아버지도 그땐 임시방편으로 입에 풀칠하려고 작업을 하고 계시긴 해도, 동생의 국전 입선소식에 상당히 고무되신 듯 어느정도 희망을 품어보시는 것 같았다.

헌데 아버지는 (그게 예술가 기질인지는 몰라도) 성실하다기보다는 기분에 좌우되는 면이 좀 있으셔서, 살림이 편안한 날이 없었다. 자식이 셋인데다, 어머니도 병약하셔서 이래저래 돈들어 갈 곳이 많았으므로, 뼈가 부서지게 일하셨어도 꽤 쪼들렸을 상황이었다. 어린시절에 만취해서 돌아오신 아버지가 방 안에 걸린 나무십자가를 떼어내 벌건 손으로 우두둑 부러뜨리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집에는 손벌리기가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고 해서, 큰 오빠와 나는 장학금으로 대강대강 학업을 해결했고 (오빠는 공부 잘해서 받은 돈이지만, 난 그런 것도 안되서 그냥 극빈자장학금 받았다) , 작은 오빠는 본인의지로 학업을 포기했다.

그러던 중..등록금 대는 데 스트레스를 받다가.. 내가 그만 자퇴를 해버리고 동가식-서가숙하며 지낼 때, 아버지가 [너도 화가나 해봐라. 평생직업이나 마찬가진데.]하고 말씀하셨을 땐, 정말 슬펐다.

화가를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인정해버리시다니..

아버지가 우리 어릴 적에 말씀해주셨던 꿈은 어디로 갔을까..




2년전이었나.. 친구들과 샤갈 전시회에 갔을 때, 샤갈이 프랑스의 어느 아름다운 강가에 서있는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친구가 탄식을 한다.

-  저런 환경에 사니, 이런 그림이 안 나오겠어..? 햐~

그걸 듣고 옆에서 내가 속으로 이랬다..

- ' 니미.. (옘병..)'





언젠가 모딜리아니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난 하염없이 마음 아팠다.

예술의 가치는 도대체 언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적당한 걸까.
당대에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라면, 결국 그 시대엔 요구받지 못한 개체였다는 걸까.


왜 이런 것이 개인의 운으로 치부되는 가. 사회 전체가 책임이 있다.


이런 생각들 때문일까.
나는 안정되고, 기분에 휩쓸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두루두루 상냥하고 친절할 수 밖에 없는 직업을 택했다.  앞으로도 이런 기준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혼을 불태운다는 둥, 어렵고 힘들겠지만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둥, [진짜]가 되고 싶다는 둥.. 어쩌다 마주치는 이런 꿈쟁이들을 늘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본다. 뭔가 소중한 걸 놔두고 온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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