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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illusion & religion







'미네르바 체포' 관련하여 연일 헤드라인에 굵은 글씨가 올라온다. 진짜냐 가짜냐의 논란은 무시하고, 검찰은 '그 사람이 이 사람 맞다'고 열렬히 주장하는 중이다. 조사 후에는 '이 사람이 뭘 알아서 쓴 글도 아니고, 알고보면 죄다 짜집기'라는 결론을 냈다. 가수 조영남씨는 공중파 라디오 멘트를 통해 어줍잖은 미네르바 비난을 했다가 공공의 적으로 등극, 환갑 지난 노구(老軀)에 동시다발로 쏟아지는 독설화살을 받아내는 형편이고..



나는 잡힌 30대 박씨가 진짜 미네르바냐 아니냐에는 사실 관심없다. 그의 글은 한 줄도 읽은 바가 없고, 아고라 자체를 별로 가보질 않았다 (유머 즐보드는 간혹 가지만..). 난 그냥 미네르바가 우리들의 모습일 뿐인데, 사람들이 진위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것이 우습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을 개방해 본 사람이라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고자 했던 것이 얼마나 순진하고 천진했던 옛날 얘기인가 싶을 것이다. 의도적이던 은연중이던 우리는 블로그나 미니홈피, 토론, 댓글에 자신을 담을 때, 자동으로 '포장'을 한다. 자기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공개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정보를 주관적인 판단으로 하나 둘 제외시키다보면,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감추고 싶은 얘기들은 쏙 빠지게 된다. 그러니 '포장'이다. 물론 인터넷 외의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의 어필은 그러한 식으로 진행되지만, 대개 행동거지나 말투 하나하나에서 그 사람의 웬만한 약점은 어느정도 드러나곤 한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적는 글들은 수정과 삭제로 언제든지 reset 될 수 있는 [간편 이미지 메이커]의 기능을 갖고 있다.



한 때 '미니홈피 우울증'이라는
신종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었다. 타인의 미니홈피를 방문해서 멋지고 화려한 사진들과 사색깊은 게시글로부터 소외감과 패배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던 증상이다. 이어서 '블로그 우울증'도 등장했다. "왜 내 글은 인기를 얻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에서 비롯된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 실제론 쾌활한 사람이지만 포스팅 컨셉을 어둡게 잡기 시작하여 결국엔 블로그 상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고 이중(?)성을 갖게 되어버린 사람 등이 이러한 병을 얻게 된다.



30대의 박씨는 앞으로 한 기업에 입사가 내정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 전문대를 졸업한 무직자'로 표현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검거 당시 [미네르바는 집에 틀어박혀 살던 30대 백수 청년]으로 보도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미네르바가 경제전문가가 아니며, 게다가 백수라는 점에서 믿기 힘들어했던 것 같다. 며칠 지난 지금에서야 '백수가 만수보다 낫네..'하면서 가까스로 경력의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넘어가는 눈치다.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왔다는
조소를 피하기 위해서 일까?



흔히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세상과 소통한다는 표현을 쓰지만, 결국 내가 보고 싶은 세계만 보는 데 머물기 때문에 이 역시 또 하나의 '우물'이다. 역으로 나도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우물 안 개구리'다. 미네르바 교(敎)가 '30대 무직 박씨'를 교주로 인정하고 그 명맥을 유지할 지, 아니면 끝끝내 나타나지 않을 진짜 신 미네르바를 기다릴 지, 아니면 빅뉴스의 임계점 3개월을 넘겼을 때 '미네르바 궁전의 추억'이 흘러간 옛 이야기로 등장할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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