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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8/8 최악의 여름입니다



다세대주택들이 밀집해있는 어느 작은 동네에, A는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와는 달리 거주민들은 따로 주차장을 갖고 있지 않기때문에, 거주자 우선주차제가 실시되고 있는 동네지요.


거주자 우선주차제란...
[일정지역 내에서 요금징수와 함께 거주민에게 주차우선권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주택가에 인접한 도로에 페인트로 네모난 구획을 그어서,
신청자에겐 월 몇 만원의 비용을 부담시키고 주차공간으로 제공합니다.


A도 차를 갖고 있기때문에 작년부터 꾸준히 신청해보았지만, 사는 곳이 워낙 땅은 좁고 인구는 넘쳐나는 곳이라...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8개월 정도는 몰래몰래 근처의 개천가에 부정주차를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주아주 반가운 전화를 한 통 받게 되었지요. 도시관리공단으로부터 말입니다.
A가 사는 집과 바로 인접한 골목에 빈 자리가 났으니 사용할 의향이 있냐고요. A는 당연히 그 자리에서 긍정을 했습니다.


알고보니, 그 자리는 A의 옆집에 살던 분들이 타지역으로 이사 가시게 되어서 반납한 자리였습니다.
어쨌든 A는 정해진 주차요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며 몇 달간 편하게 그 공간을 이용했습니다.



한편 A의 옆집엔 새로운 이웃인 B가 이사를 왔고,

정작 그 사람들은 주차공간이 없어서
A의 차 바로 뒤에 주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A의 차가 후진을 해서 나와야 할때 쪼끔 골치가 아프기도 했지만,
A는 그런 일로 뭐라고 한 적 없습니다.
주차난이 너무 심각해서 다른 주민들도 다들 그런식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A는 원래 불편하다고 먼저 말꺼내는 성격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일주일 내내 아침마다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 차 좀 빼세요. "

" 예? 어디신데요? "

"옆집(B)인데요. 공사를 해야되니까 차 빼세요."


차 좀 빼주시겠습니까? 가 아니라.. 차를 빼라?
A가 무슨 불법주차를 했습니까?
어이가 없었지만, A는 눈비비고 나가서 군말없이 차를 빼줬습니다. A는 아무튼 바보입니다...



한달 전, A에게 도시관리공단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 B씨 댁에서 지금 A씨가 쓰고계신 주차공간을 쓰고싶다고 하시는데요. 다른 자리로 옮기시면 어떨까요? "

" 예에?? 아니, 제가 먼저 배정받아서 잘 쓰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 네.. 그러신데요.. 그 분들이 하도 그 자리를 원하셔서요. "

" 말도 안됩니다. 자기 원하는 대로 자리를 얻기가 쉽습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선착순이었고, 저도 8개월이나 기다렸어요. 전 옮길 생각 없습니다. "

" 한번 더 생각해보시면 안될까요? 제가 강제로 요구할 수 없는 사항이긴 합니다만.. "

" 저도 일때문에 차를 가깝게 주차해야하는 사람이고, 이런 식의 요청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



전화를 끊고 나서 A의 기분은 찜찜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공단 직원이 개입해서 저런 요청을 하다니, 이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있는 일인가!
그 뒤로도 공단에서 한번 더 전화가 왔지만 A는 역시 거절을 했고, 그러자 공단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분들과 직접 얘기해보시면 어떨까요? 전화번호를 알려드려도 되겠습니까? "

A는 알려주던지 말던지 결과는 변함없으니 맘대로 하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습니다.



열흘 전, 잘 알고 지내는 이웃 한 분이 웬일로 A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 실은.. 이번에 이사온 B씨 댁에서 주차공간을 양보해주면 안되냐고 나한테 좀 물어봐달라고 하더라구요. "

A는 완전히 꼭지가 돌았습니다. 왜 애먼 사람을 시켜서 그런 부탁을 하는 건지.
집요한 건 둘째치고, 본인들은 쏙 빠지고 주변사람들 이용하는 행태가 괘씸하기 이를 데가 없었으니까요.
A는 정중한 거 다 집어치우고 다짜고짜 싫다고 했습니다. 이웃은 머리를 긁으며 돌아갔습니다.



지난 일요일,
A는 점심때쯤 차를 갖고 나갔다가 저녁무렵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와보니 B씨네 집과 A의 주차공간이 맞닿은 공간의 벽이 그새 허물어져있고 웬 철창문을 달아놨더군요.
(왼쪽 그림의 노란색이 새로 만들어진 철창문입니다)

'저건 또 왜 달았담..' 하면서 A는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어제 또 A의 휴대폰에 공단의 전화번호가 찍혔습니다.

" 죄송합니다만, 주차구역을 바꾸셔야겠습니다. "

" 왜요? "

" B씨가 A씨의 주차구역을 향해서 문을 내셨기때문에, 거주민 통행에 방해가 되는 주차구역은 삭제를 해야합니다. 그 자리는 없어질 겁니다. 그러니.. "

" 뭐욧!! 이 사람들이 정말..!! 만약 제가 안 나가겠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 그럼 강제퇴거를 당하시게 됩니다.. "



하늘이 노래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차공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옆집 사람에 대한 분노로 인해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눈치채셨겠지만..



A는 접니다. ㅠㅠ
전화받은 날은 하루종일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를 삭힐 수가 없었습니다만,
저도 모르게 " 저 인간들 얼른 교통사고 나라. 차 완전 부서지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다쳐버려라. " 하고 주문을 외우는 걸 깨닫고 섬찟해져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주차시비로 이웃 간에 살인 나는 뉴스들.. 저 완전 공감했습니다. 뭐 이런 개호로XX들이 있습니까?



차 한 대 넣기 딱 좋은 자리를 구획까지 지워서 비워놨으니,
이제 B씨댁에선 주차비 부담도 없이 편하게 파킹하실 수 있겠네요. ^_^ 축하해 드릴까요? 이 십장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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