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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도서

푸시 (PUSH)




나 혼자 버스에 타본 것은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보광동에서 60원 요금을 넣고 81번 버스에 올라타서 육본 (육군본부)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거기가 흔히 '돌아가는 삼각지'로 유명한 한강로 1가다. 당시 우리집은 이태원에 있었지만, 아버지 화실은 삼각지에 있었다. 이제와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엄마의 애들 들볶는 성질은 정말 보통이 아니어서 난 툭하면 집을 나와 아버지 계신 곳으로 도망가곤 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동안 옆에서 군것질을 하면서 빈둥거리고 놀았다. 지금처럼 TV가 하루종일 나오는 시절도 아니었고, 라디오나 듣던가 누군가 줏어다놓은 잡지같은 걸 뒤적거렸던 기억이 난다. 미군이 주둔한 동네라서 줏어온 책 중엔 양키만화 (마블만화)도 가끔 있었는데,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현란한 컬러가 특징이었다. 하지만 영어대사를 읽을 방법도 없고, 그림이 그다지 소녀 취향이 아니어서 한 두장 넘겨보다 흥미를 잃었다.


삼각지에서 유명한 원조대구탕집이 있는데, 그 대구탕집 있는 좁은 골목에 수입잡지만 취급하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해적판은 아니고 원판은 맞는 것 같은데, 아무튼 어둠의 경로로 들여와서 파는 가게였지만, 미군 상대로 장사가 잘 되는 집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엄마가 그 가게에서 'Seventeen'이라는 하이틴잡지를 사다주신 게 계기가 되서 가끔 구경하러 들려봤는데, 거기서 활발히 거래되는 품목이 바로 그 양키만화였다. 난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안봤지만, 아마 거기에 수퍼맨이나 배트맨도 있었을 거다.

썰이 장황했는데 뭐 이런 얘기를 한 이유는, 오늘 본 영화가 그런 마블만화를 원작으로 한 [Push]이기 때문이다. 내 취향이 아닐뿐, 아마도 마블만화는 팬들에겐 로망일거다. 액션 히어로, 세계평화, 평범한 주인공의 파워풀한 변신 같은 거. 사실 나도 이런 사실은 모르고 가서 봤지만, 포스팅하려고 사진 좀 찾아보다가 알게 된 거다. 만화 원작이라서 그렇다고 해야될까나.. 내용이 쫌 벙찌고 막판엔 상당히 무책임하다. 반전 만들려고 논리를 포기했다...;;


특히 캐릭터타입이 내가 아는 애니메이션과 도다리다. 전지전능한 한 사람이 아니라 '1인 1기' 타입의 초능력자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것은 픽사의 [인크레더블]과 닮았다. 차이점은 [인크레더블]은 정부에서 초능력자들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주지만, [푸시]는 초능력갖고 태어나버리면 디비전이라는 비밀조직한테 마루타 될까봐 쫓겨다닌다는 거다.


주인공은 평소 훈련을 게을리해서 지 능력도 제대로 발휘 못하는 그런 근육맨이다. 거의 주변 초능력자들이 일은 다 했다. 글타면 머리가 좋은가? 솔직히 지휘는 개떡같이 했는데, 거느린 애들이 찰떡같이 알아들어준 덕분에 해피엔딩 된거다. 그런 주제에 역시나 결정적인 순간엔 제대로 능력 발휘한단 말이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타입??


SF고 판타지인데 그냥 즐기라고? 아씨, 그래도 아쉬운 걸 어떡해!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어떡할꺼야! 백지를 돈으로 둔갑시키던 남자는 초능력 부려서 마누라도 살해됐다면서 왜 여지껏 그 능력 써먹는 건데? 다코타 패닝의 엄마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야? (이랬다고 2탄 만들면 니들 가만 안둔다..-_-)


오늘 난 어린시절의 그 때처럼, 그림에서는 뭔가가 팡팡 터지고 무지개색 섬광이 번쩍거리는 마블만화를 한 권 줏어서 대충 몇 페이지 넘겨보다가, 뭔 얘긴지 못알아먹겠다며 등 뒤로 휙 집어던져버렸다. 그냥 '세븐틴'이나 읽는 게 낫겠어.


** 올리고 보니, 저 포스터 대체 어느나라 버전이야..?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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