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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돌아보며..





사람이 학습하는 방법에는 이성으로 생각해서 받아들이는 면도 있겠으나,
모질긴 해도 경험으로 아는 것에 비할 방법은 없는 듯 하다.




내가 학교를 관두고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하고 다닐 때, 딱 일주일간 근무해 본 주유소가 있다.
알바같은 것은 아니고 사무직으로 들어간 자리였는데, 그 주유소는 작은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어느 회장님께서 그냥 재미삼아 인수해 본 그런 곳이었다. (채무 대신 받는 식으로..)

L건설에서 근무하다 그만 뒀다는 그집 큰아들이 경영을 맡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어떤 타입이냐..면.

10대 가출소년들 데려다가 주유소 알바를 시키는 데,
세차비 삥땅친 것을 조용히 관찰하다가 어느날 현장에서 적발해서 대걸레자루로 피떡이 되도록 구타를 하고는,
그날 밤엔 룸살롱에 데려가 양주를 시켜주며 위로 및 격려를 해준 일화가 있다.

고작 일주일 근무하는 동안, 난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에 '왜 저러는 걸까?'하며 의아한 적이 많았다.

그가 자기가 겪은 젊은 날의 치욕 (그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였다) 을 들려주는데,
L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연수기간 동안 L사가 운영하는 L백화점 로비에서 다른 신입사원들과 일렬로 서서
백화점을 찾는 고객을 향해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어서오십시오!"하고 인사했던 기억이 치욕이였다는 거다..

물론 나야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별게 다 치욕이구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년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한창 선거운동할 때,
풀빵장수 앞에서 자기도 어릴때 풀빵 팔아봤다며 풀빵 굽는 시범도 보이고,
아주머니에게서 구워진 풀빵을 건네받아 입에 넣었다가 팥고물이 떨어지자 "어이구, 이 아까운 것"하며 주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어라.. 이 사람 참 리얼하네..' 하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그래도 누굴 뽑을지 정하지 못한채로 있던 차에 지난 겨울에 막내이모가 돌아가신 일이 생겨 영안실을 찾았다가
고려대 출신이신 큰 외삼촌께서 은근히 이명박 후보 지지하라고 권유를 하시길래,
" 안그래도 삼촌, 이명박이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너무 배고파서요. 딱히 다른 사람이 눈에 들지 않을거에요."
하고 유하게 넘어갔다.

결국 난 권씨 후보에게 한 표 던졌지만, 그것도 딱히 그 사람 너무 좋아서는 아니고 달리 눈에 드는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노동운동한 공을 봐서 그 사람을 찍었다. 솔직히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젠지 그젠지 이대통령이 서민들 초대해서 청와대에서 밥 한끼 한 모양이다.
시장에서 목도리 둘러줬던 시래기파는 할매도 부르고, 여튼 많이 불렀나보다.
자기도 노점상 출신이라며 가게 하나 갖는 게 소원이었다고, 그래서 여러분 맘 다 안다고 했던 모양이다.
(다음 뉴스에서 이 기사에 어느 네티즌이 댓글 달아놓기를, [쟨 뭐든지 다 해봤데..]래서 폭소했다)

자리가 마칠 무렵에 "내년은 더 어려워질것 같아 송구스럽다" 라고 했다고 한다.
설마설마 했는데, 이젠 본인도 인정을 해버렸다. 하지만 이 사람이 입밖에 내놓지 않은 말머리엔 [세계가 다같이 어려우니]라는 구절이 있었을 거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내년에 더 어렵다는 거다. 안좋은 말은 틀림이 없었으니, 이건 거의 확정이다.




작년 8월부터 조심스럽게 첫 걸음마 떼기 시작했던 일에 이번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적지만 꼬박꼬박 월급 나오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돈이란 건 [수금이 되어야] 들어오는 거라서 지난 2달은 바쁜 건 없으면서 마음만 초주검이 되곤 했다. 경제 한파를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다행히 혼자 벌려놓은 일은 아니어서, 어느정도 안정이 되면 난 '단지 상담이 하고 싶을 뿐이고~'를 외치며 다시 샐러리우먼으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요새는 그저 [있는 돈 까먹어 가며] 열심히 수업 중이다. 잘 될거라는 말은 요즘같아선 쉽지 않지만, 나는 의외로 요령이 없어서 크게 잃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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