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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돈의 추억 - 첫번째






당신은 어린시절을 떠올리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가?



나는 어린시절이 생각나면 즉시 다른 생각을 해내려고 애쓴다. 머물고 싶지 않은 기억들.
인생을 잘라내는 가위가 있다면, 태어남으로부터 스물다섯이 될때까지 지낸 시간은 싹둑 잘라내고 싶다.



어머니는 평생을 육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다량의 진통제에 의존하였다.
얼마되지 않는 생활비가 들어오면 어머니는 쌀이나 연탄보다도 약을 먼저 샀다.
약을 싸게 사려고 남대문시장에 간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여섯살된 나를 집에 홀로 내버려두고 달려가다시피 외출을 감행하곤 했다.
내가 울부짖으며 버스정류장까지 어머니를 뒤좇아 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에 타버렸다.



난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진저리치고 있다는 것을.
아들 둘을 제 앞가림할 정도로 키우고 났을 때, 엉뚱하게도 나를 임신함으로써 끝없이 이어지게 된 육아에 대해서 말이다.



아버지는 돈에 대한 불안을 주로 술로 잊었다.
아빠가 벌개진 얼굴로 들어와 아들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벽에 걸린 나무십자가를 집어들고 단번에 반으로 뚝 분질러버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무서워 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업고 집을 나서야했다.
그리곤 아빠가 잠들때까지 어두운 골목길을 오래오래 돌아다니시며 등에 업힌 나에게 짧은 얘기들을 들려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금새 기분이 좋아져서 엄마 등에 얼굴을 파묻고 행복해했지만,
집에 남아있던 오빠들은 어떤 괴로움을 당했을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의 돈은, 너무나 처절하고 증오스럽고 중독적이며 절대적인 것이었다.
부모님은 항상 그것때문에 싸우고, 그것때문에 울고, 그것때문에 삶을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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