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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술이다 1




*

술에 대한 첫 기억은 여섯살 때(아마도?)이다.

나보다 열 한살 많은 큰오빠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이다.

어느날 부모님이 집을 비운 시간에 큰오빠와 친구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어떤 사람은 기타를 치고,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브룩쉴즈 사진을 보며

그렇게 뒤엉켜 있었다. 그러다 얼렁뚱땅 갈색병의 크라운맥주가 등장했다.

우리 아버지는 늘 소주만 상대하는 분이셨고,

맥주는 간혹 외가의 잔치가 있을 때나 엄마가 한 잔 정도 맛을 보는 술이었다.

오빠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틈틈이 오빠방을 들락거리며 요리조리 껴들어 참견하던 나는

맥주병을 보자마자 과감히 유세를 떨었다.

" 나도 맥주 마셔봤어..! "

당시 큰오빠와 제일 절친했던 원제오빠가 당돌한 그 말을 듣고 크하하 웃더니,

가정용 맥주컵에 맥주를 콸콸 따랐다. 절반은 거품인 그 잔을 받아서 나는 꼴깍꼴깍 다 마셔버렸다.

" 이것 봐라~ 다 먹었지~ "

그 다음은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다음날 낮이었다.



**

고3 , 학력고사를 100일 앞둔 날이었다.

소위 '백일주'라는 걸 마신다는 핑계로, 좀 놀던 애들은 늘 가던 술집으로 화려한 외출을 했건만,

과히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면서 딴짓도 해본 적 없는 나와 내 친구들은 갈 곳이 없었다.

왠지 허전했던 내가 과감히 수퍼에 가서 술을 한 병 사왔다. 진로에서 나온 750원짜리 포도주였다.

2홉 소주병만한 크기였는데, 뚜껑을 따니 말도 못하게 역겨운 술냄새가 풀풀 났다.

사고를 쳤다하면 사리분별을 못하고 얼간이 짓을 하던 때라서,

그걸 하필이면 학교의 빈 교실에서 친구들과 나눠마셨다.

복도를 순찰하던 윤리선생님에게 그 장면을 들켰는데, 크게 야단을 맞은건 아니었지만

그 엄중한 눈빛때문에 같이 있던 애들이 죄다 풀이 죽고 말았다. 주동자인 나는 말할 것도 없고.



***

대학에 들어가니 민속주점을 통째로 빌린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지엄하신 선배들이 주최해주신 이 뜻깊은 자리에 감히 일신상의 이유로 불참하는 신입생은 물론 없었다.

스텐 국그릇이 한 개씩 배급되고, 테이블마다 오이냉국이 한 사발씩 놓여졌다.

국그릇에 철철철 부어지는 깡소주.

주는 대로 넙죽넙죽 다 받아먹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그대로 실신했다.

(내가 토한 미역줄기.. 잊혀지지 않는다.. )

1학년 여학생 중에 두 명이 이렇게 맛이 가서.. 나는 4학년 선배에게 업혀서 집에 가고,

인천이 집이었던 다른 동기는 근처 찻집에 옮겨져 계속 게워내다가 여관으로 옮겨졌다.

다음날 선배들은 바닥이 엉망이 되버린 찻집에 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다가,

대노하신 우리 아버지를 만나 역시 무릎꿇고 사죄하는 수난을 겪었다.

단 하루만에 얼굴이 반쪽이 되어버린 나는 그 날 이후론 소주는 입에 대지도 못한다.



****

큰오빠가 결혼할 여자를 소개해주던 날이다.

오빠친구가 한 명 동석해서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로비라운지에서 함께 버본을 마셨는데,

동남아인들로 구성된 밴드가 나와서 [아이오유(I.O.U)]나  [마카레나] 같은 걸 부르는 그런 bar 였다.

적당히 먹겠거니 싶어서 잔으로 시키기 시작한 버본이었는데,

나중에는 웨이트리스가 "차라리 병으로 시키실 걸 그랬네요." 하고 걱정을 할 정도로 많이 마셨다.

코크향이 감도는 달착지근한 버본이었는데, 여튼 그날 오빠친구 차에 실려서 귀가했다.

듣자하니 친구분 차가 BMW라길래 취한 김에 얻어타볼까하는 속셈으로 무리했던건데,

하필 그날 몰고 온 차는 국산차였다. (된장녀의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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