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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식 사랑법




제가 별볼일없는 서민으로 사는 것에 우울했던 요즘입니다만, 오늘은 인터넷뉴스에서 현직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산산이 부서진 사진을 보면서, 맘껏 슬퍼해도 되는 저의 위치에 차라리 감사했던 날입니다.



불붙인 담배를 분향소에 올리는 국민들의 아린 마음을 우리 중 누가 모르겠습니까.



총선출마 시절 장인의 좌익 전력으로 인해 맹공세를 받을 때, 전당대회에서 이 양반이 목에 핏대를 세웠습니다.
" 조강지처 버려야 대통령 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노무현이 대통령 안하겠습니다!!"

전 그걸 기억하고 있어서, 최근에 논뚜렁이니 명품시계니 하는 보도가 나올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이회창은 아들이 발목 잡더니, 저 사람은 부인이 발목 잡는구만..'



권 여사가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원래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게,
하고 싶은 짓 다 해보고 갖고 싶은 거 다 가져보는
그런 자리 아니었습니까?
내내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자리에 미운 오리새끼처럼 홀로 강직한 저 사람이 끼어들었습니다. 그 성정을 믿어 의심치 않는 국민들이 있지만, 그걸 어떻게든 흠집내려고 안달난 작자들은 형이니 아들이니 딸이니 부인이니 닥치는 대로 껀수 만들어 엮어보려던 건데. 미친놈의 시대가 그쪽 편이라 몇 개 걸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날이 와버리고 말았네요.



어제 낮 쯤에 속보 흐르는 것을 보니 '노무현 뇌물수수 관련 수사' 종결한다고 합디다.
이런 진행상황을 보니 그 분, 본인이 힘들다는 건 핑계고, 검찰소환받은 아내의 파란많을 노후가 애처로워 저런 식으로 지켜주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돌아가서 지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노대통령과 팔짱끼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언젠가 前대통령의 낙향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 혼자 집 앞에 나와 사람들 앞에서 손을 흔드는 그를 인터뷰했습니다.


- 왜 혼자 나오셨어요?

- 하도 여자들하고 팔짱끼고 사진을 찍으니까,
처가 샘을 내요. 그래서 오늘 안 나왔어요.



멋적게 웃던 그 분.



그에게 '거인', '걸출' 같은 표현 안 씁니다. '친숙', '편안' 이라는 단어가 딱이었습니다. 뜻을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인데도, 강제적인 느낌이 들지 않던 사람. 웃는 얼굴 뒤로 거짓이 보이지 않던 사람.

강하면서 한없이 부드럽던 그 사람이, '훈육주임'같은 아내가 정신을 잃을만큼 놀래키고 떠나가버렸습니다.



바보같은 게 아니라, 바보 그 자체인 사람.
안녕히 가십시오.
가시는 길 내내 자욱할 담배연기 원없이 들이마시고
조용한 서가가 마련된 햇볕 잘드는 천국의 방에서 편안히 쉬십시오.
당신의 사랑법에 뒤늦게 통곡하는 우리들은 '질나쁜' 바보일 따름입니다.